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플라자합의에서 아베노믹스까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플라자합의에서 아베노믹스까지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세계 경제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일본은 여러 가지 위기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 침체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일본이 어떻게 회복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플라자합의에서 아베노믹스까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플라자합의: 엔화 강세와 수출 위기

플라자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미국의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G5(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회의에서 결정된 환율 조정 협정입니다. 이 협정의 목적은 미국의 대외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를 약화시키고, 달러에 연동된 엔화와 마르크를 강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협정은 일본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달러당 250엔이던 환율이 몇 달 만에 120엔으로 반 토막이 났습니다. 이는 일본 수출품 가격이 두 배로 올랐다는 말입니다. 일본은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였기 때문에, 엔화 강세로 인해 수출이 급감하고 경기가 침체되었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무역적자가 커진 것은 큰 문제였습니다.

거품경제: 부동산과 주식의 폭등과 붕괴

일본은 수출로는 답이 안 나오자, 내수를 살려서 성장을 지속하려고 했습니다. 내수를 살리려고 기준금리를 6%에서 2.5%로 낮추고 부동산 규제를 풀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동산과 주식에 돈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싼 이자로 쉽게 대출이 되니 사람들은 대출을 풀로 받아 부동산을 샀고,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자 가격은 끝없이 올라갔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다시 대출한도가 생겼고, 그 부동산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또 다른 부동산을 구입하는 부동산 광풍이 시작되었습니다.

부동산 광풍의 강도는 도쿄의 부동산 가격이 87년과 88년 1년만에 3배가 오르는 정도였습니다. 우리로 치면 2호선 역세권인 도쿄 메트로 긴자선 역세권은 도쿄 평균보다 더 많이 오르고, 신바시, 아사쿠사는 10배, 아오야마는 15배가 1년 만에 오르며 부동산 졸부들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저금리와 대출 경쟁은 부동산도 올렸지만 일본 주가도 폭등시켰습니다. 세계 시가총액 Top 20기업 중 16개가 일본 기업일 정도로 일본 증시가 폭등했습니다. 부동산과 주식이 오르자 졸부들이 넘치는 돈을 마구 쓰는 거품경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장기 침체와 노령화

90년이 되자 일본 정부는 거품경제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금리를 다시 올리고 부동산에도 규제를 했습니다. 2.5%이던 기준금리를 다시 6%까지 올렸고, LTV를 70%까지로 제한하는 등 부동산 대출에 규제를 때렸습니다.

금리를 올리고, LTV규제가 들어가자 부동산 시장이 한방에 가버렸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경기 침체에 노령화까지 더해지자 “잃어버린 30년” 이라고 부르는 장기침체가 시작되었습니다.

운도 없었습니다. 정부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결정적인 타이밍에 큰 사건들이 계속 터졌습니다. 엔화 가치를 낮춰서 수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려고 하는 시기에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보험사들이 고베 대지진의 보험금을 주기 위해 해외에 투자했던 돈을 회수해서 일본으로 가져왔습니다.

해외투자금이 국내로 들어오며 일본 안에 달러가 많아지니, 1달러에 80엔까지 엔화가 올라가는 엔화 초강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수출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달러당 80엔까지 올라간 엔화를 십년에 걸쳐 간신히 120엔까지 낮췄습니다.

드디어, 엔화가 수출을 할만한 수준에 왔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또 터졌습니다. 대지진 보험금을 주기위해 일본 보험사들은 다시 해외에 투자했던 돈을 회수해서 일본으로 가져왔습니다. 십 년에 걸쳐서 80엔에서 120엔까지 내려놓은 엔화가 한방에 75엔까지 다시 올라가버렸습니다. 일본 주가지수도 3만 8천에서 8천까지 내려갔습니다.

아베노믹스: 엔화 약세와 소비세 인상

이런 상황에서 2013년 일본 중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이던 민주당이 폭망하고, 아베의 자민당이 전체 의석의 2/3을 가져가는 대변동이 생겼습니다. 이는 아베가 자신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추진하기 위한 강력한 기반을 확보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베노믹스는 3대 화살이라고 불리는 세 가지 전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화살은 금융 완화로, 일본은행이 엔화 가치를 낮추고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기 위해 대규모의 양적완화를 실시했습니다. 두 번째 화살은 재정 촉진으로, 일본 정부가 공공 투자와 복지 지출을 늘려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적자를 감수했습니다. 세 번째 화살은 구조 개혁으로, 일본의 경제 성장 장애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노동시장, 규제, 세제, 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아베노믹스의 효과는 처음에는 긍정적이었습니다. 엔화가 약세로 돌아가면서 수출이 증가하고,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었습니다. 일본의 GDP 성장률은 2013년에 1.6%, 2014년에 0.4%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에도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재정 촉진의 비용으로 소비세를 인상했는데, 이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가 둔화되었습니다. 소비세는 2014년에 5%에서 8%로, 2019년에는 10%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둘째, 구조 개혁의 진행이 느리고 부족했는데, 이로 인해 일본의 장기적인 생산성과 경쟁력이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아베노믹스는 일본의 구조적인 문제인 노령화와 저출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일본의 인구가 감소하고, 공무원 연금과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비용이 증가하였습니다.

아베노믹스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낮은 성장률과 높은 부채비율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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